Interview
프 렌 치 키 스
해산을 앞두고 되돌아 보는 "세 사람의 시간"의 기억
AKB48발 인기 유닛이 멤버의 졸업에 따라 해산을 결정. 5년간 활동에 종지부를 찍는다.
대인원의 그룹을 벗어나, 세 명뿐인 유닛으로 활동하면서 얻은 점을 물었다.
Interview French Kiss
2010년에 포근한 아가씨 유닛으로 결성, 『부모님께 소개하고 싶은 세 사람」 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화제를 모아, 카시와기 유키, 타카죠 아키, 쿠라모치 아스카에 의한 AKB48의 파생유닛 "프렌치키스". 15년 8월에 쿠라모치가 AKB48을 졸업한다는 것을 받아들여 해산이 결정되었다. 10월 14일에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는 앨범 『French Kiss』를 발매. 11월 5일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열리는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약 5년간의 활동에 마침표를 찍는다.
타카죠 프렌치 키스가 결성된다고 들은 건, 마침 처음으로 AKB48의 싱글 선발멤버로 선택받았던 (『포니테일과 슈슈』) 직후였어요. 아직 저를 모르는 분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큰 찬스라고 좋아했던 걸 기억하고 있습니다.
쿠라모치 제가 AKB48에 들어왔던 건, SPEED를 동경한 것이 계기. 언젠가 적은 인원의 유닛으로 데뷔하고 싶다고 바라왔기에, 꿈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어요.
카시와기 단지, 기쁨 뒤에 제가 가장 선배라는 걸 깨닫고 멋대로 프렌치 키스를 한데 모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죠. 하지만, 그것도 금방 사라졌나(웃음).
타카죠 그렇게까지 서로 깊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모두 말수도 적었어요. 하지만 함께 있으면서 점점 「우리들, 닮았네」 라는 분위기가 되었네요.
카시와기 리더는 만들지 않고, 누군가 정할 때에도 다수결에 의해 정하게 되었어요. 그래도 의견이 나뉘는 일은 없어요.
쿠라모치 「점심 뭐 먹을까?」 정도지(웃음)
프렌치 키스는 10년 9일에 『오래 전부터』로 데뷔. 11년 4월에 시작한 첫 칸무리 라디오 방송 『프렌치 키스의 Kiss라지!』 (TOKYO FM)도 인기를 모아, 같은해 11월에는 싱글 『최초의 메일』이 통산 네 번째로, 첫 위클리 1위에 올랐다.
쿠라모치 라디오에서는, AKB48로서 활동할 때랑은 기분이 달랐어요. AKB48에서는 선배, 후배를 의식하지만 프렌치 키스에서는 세 명의 관계는 편안하니까요. 그래서 제가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거나, 정리하는 편이 좋겠다 싶을 때는 점점 앞으로 나선 셈이에요.
타카죠 정말 분했던 건, 2nd 싱글 『If』 (11년 1월 발매) 때. 데일리 차트에서는 1위었는데, 위클리는 2위였어.
카시와기 AKB48의 싱글 판매량도 물론 신경쓰이지만, 프렌치 키스에서의 활동결과는 제 노력에 대한 평가라는 느낌이 더욱 강해요. 그래서 『최초의 메일』로 드디어 첫 위클리 1위를 했을 때의 기쁨은 각별했어요. 세 명이 정말 기뻐했고, "1위"라는 순위의 무게를 재확인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타카죠의 JKT48 이적으로 공백
12년에 타카죠가 해외자매그룹 JKT48로 이적하게 되었지만, 프렌치 키스는 계속. 14년 2월에 타카죠의 JKT48 겸임이 해제되어 다시 활동이 활기를 띄었다. 7월에는 칸무리 방송 『프렌치 키스의 키스타비』 (테레비도쿄)가 방송시작. 약 2년만의 신곡 『기억나지 않는 꽃』이 10월에 발매되어, 같은 달에는 처음으로 단독 콘서트 『프렌치 키스 프리미엄 라이브』가 Zepp Tokyo에서 개최되었다.
쿠라모치 아키챠(타카죠)가 JKT48로 이적한 직후에는, AKB48의 악수회에서 「프렌치 키스는 어떻게 되나요?」 라는 질문을 자주 들었네요.
카시와기 맞아. 「저희들도 몰라요」 라고 답했어요(웃음). 그 때는, 흐름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으니까.
타카죠 그래서 제가 귀국해서 그 때까지 여전히 라디오 수록을 하고 있다고 들었을 때는, 프렌치 키스는 아직 계속 하는구나 싶어서 안심했어요. 게다가 『프렌치 키시의 키스타비』도 시작되었죠. 방송은 싱글 특전 DVD (※) 에 수록됐던 한국과 마카오에 여행간 영상이 베이스였죠. 단지 DVD 영상은 세 명 모두 정말 자기식이라 느긋해서요(웃음). TV방송은 보다 여러 나라로 여행가나 싶었는데 말이죠…
쿠라모치 전혀 변함없이(웃음). 하지만, "프렌치 키스다움" 을 생각하면 그편이 좋았을지도 몰라.
카시와기 세 명만 가는 여행이라서 「꾸밈없는 우리를 볼 수 있었다」 라고 친근감을 느끼셨나 봐요. 하지만 예쁜 풍경을 보고 무심코 제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이 그대로 방영되었을 때는, 너무 일상풍경 아니야? 라고 놀랐지만요(웃음).
타카죠 첫 단독 콘서트 때는 세 명이 팬분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일 자체가 오랜만이었어요. 하지만, 가볍게 리허설을 맞춰봤을 뿐인데 금방 잘 맞아요. 각자 여러 경험을 했지만, 세 사람 다 변함없구나를 느꼈습니다.
카시와기 이 콘서트에서는 (솔로, 앵콜도 포함) 18곡을 불렀는데요. 다시 한 번 유닛으로 발걸음 했어요.
쿠라모치 기쁜 건, 「세 명의 콘서트를 더 많이 보고 싶어」 라는 목소리를 많이 들었다는 점이에요. 그게 프렌치 키스의 마지막을 큰 장소에서 콘서트로 장식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요?
세 명만으로 활동하는 장점
다시 활동이 늘어났다고 생각하던 차에, 쿠라모치의 AKB48 졸업, 그리고 프렌치 키스의 해산이 발표되었다. 세 사람은 이 유닛으로 활동하면서 무엇을 얻었을까.
카시와기 못치(쿠라모치)가 졸업한다는 걸 듣고, 이 세 명이 아닌 프렌치 키스는 상상할 수도 없으니까 해산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어요.
쿠라모치 AKB48의 삿호(이와타테 사호)나 오오카와 리오쨩 등, 「저도 프렌치 키스 멤버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해주는 멤버가 있어서 기뻤어. 저도 참가한 8월 27일의 (팀B) 『파자마 드라이브』 공연 천추락에서는, 우메타 아야노 쨩, 노자와 레나 쨩, 요코시마 아에리 쨩 유닛이 2nd 싱글 『If』를 골라 불러 주었는데요. 저희는 세 사람 모두 팀B였기 때문에, 후배들이 곡을 남겨준 것에 감동했어요.
카시와기 프렌치 키스로 활동할 때는, 제가 즐기면서 활동한 걸 팬분들도 기뻐해 주신다는 걸 배웠어요. 이 유닛이 있었기에 "솔로 데뷔(13년)도 하고 싶네"라는 마음이 생겼으니까요.
타카죠 프렌치 키스로 TV방송에 출연하면 저만 찍어 주시는 기회도 늘어났고, AKB48의 악수회에서는 프렌치 키스를 계기로 저에게 흥미를 갖게 되었다고 이야기 해주시는 분들도 늘어났어요. 유닛의 찬스를 받은 게 저에게는 힘이 되었습니다.
쿠라모치 AKB48의 인터뷰에서는 인원이 많아서 간결하게 답하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데요. 프렌치 키스는 세 명뿐이니까 길고 구체적인 답을 원하는 경우가 늘었어요. 그래서 매사에 깊게 생각하거나, 지금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의식하는 등 성장할 수 있었어요. 이 경험을 토대로 목표로 하고 있는 스포츠 캐스터의 일도 생겨났고요.
해산기념 앨범 『French Kiss』는 카시와기, 타카죠, 쿠라모치가 프렌치 키스의 지금까지 노래 중에서 선곡이나 곡순까지 정해 세 가지 타입을 발매한다.
쿠라모치 테마는 봄·여름·가을·겨울입니다. 계절의 변화를 느껴 주신다면 정말 기쁠 거예요.
카시와기 처음이자 마지막인 앨범이니까 곡의 마지막인 아우트로와 다음 곡의 인트로가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고려해서 하나의 큰 작품으로 들어주실 수 있도록 선곡했습니다.
타카죠 저는 콘서트 세트리스트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일부러 흐름이 바뀌는 포인트를 만들었어요. 예를 들어 5번째 곡인 『최초의 메일』과 6번째 곡인 『If』 사이에 옷을 갈아입는다면 MC가 들어가려나? 하고(웃음).
스캔은 늘봄님이 해주셨어요 (^ㅅ^)♥
정말 고맙습니다! 덕분에 프렌치 키스의 인터뷰를 볼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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